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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보는 역사

인류 최악의 흑역사 히틀러의 유대인학살

by 놀러와이 2023.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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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히틀러에 대해

독일의 정치가이며 독재자입니다.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장본인이죠.

1933년 수상으로 임명됩니다. 1934년 대통령이 죽자 대통령 지휘를 겸하여

총통 및 수상이 됩니다.

독일의 유일무이한 독재자가 된 히틀러는 국력을 이용하여 국가 발전을 꾀했습니다.

하여 외교상의 성공을 거두고 경제 재건 과 번영을 이루었으며 군비를 확장하여

독일을 유럽의 최강나라로 발전시켰습니다.

하지만 2차세계대전을 일으키고 패색이 짙어지자 자살하였습니다.

히틀러의 죽음에도 갖갖은 추측이 지금까지도 난무합니다.

 

2.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한 이유

히틀러는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당시 독일에 퍼져있던 반유대주의

이용하였습니다.

권력을 잡자 유대인 차별하는 정책을 만들었는데요.

차별의 이론적 근거는 인종주의입니다.

인종주의란 인종의 특징에 따라 불평등한 억압을 합리화하는 비과학적인 사고방식입니다.

고등인종인 게르만 민족의 순수성을 이어가기 위해

하등 민족인 유대인과 피가 섞이면 안 된다는 것이었죠.

그렇다면 히틀러와 나치는 왜 유대인을 타깃으로 삼았을까요?

히틀러의 나의 투쟁에서 기록된 유대인 묘사에 대한 묘사를 한번 보겠습니다.

 

사무실마다 유대인들로 가득 차 있다

거의 모든 사무원이 유대인

거의 모든 유대인이 사무원

사무실에 이들 선택된 민족의 용사들이 그렇게 많은 것에 놀랐고

전방에 그들의 대표가 드문 것과 비교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경제 쪽을 보면 사정이 더욱 나빴다

여기에서 유대인들은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어있었다

거미가 천천히 민족의 땀구멍에서 피를 빨아먹기 시작하고 있었다

 

히틀러는 용감한 독일인들이 조국을 위해 싸우다 죽어가는 동안

유대인들은 평안한 사무실에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실제로 유대인들은 산업혁명 이후 다양한 산업 분야에 진출하였으며

독일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1933년 노벨상 수상인 1/3이 독일인이었으며 그중 1/3 유대인으로

사회적으로 성장하고 좋은 직업을 가지는 유대인에 대한

독일인의 반감이 점점 커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하고 독일 내 유대인이 경제활동을

활발하게 하게 되자 유대인이 독일경제를 장학하고 있다고 믿게 됩니다.

독일 인구의 3%가 유대인인데 독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0%

베를린 인구 320만명 중 유대인이 21만명 전문 직종 50% 이상을 유대인이 장악했습니다.

무엇보다 유대인들은 금융권을 쥐고 있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막대한 배상금을 갚아야 했던 독일은 초인플레이션과

대공황 겪으면서 55만명의 실업자 발생하였고 대량실업 사태로

굶어 죽는 사람 속출, 독일 국민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는 듯하였지요.

초인플레이션과 식량 부족을 설명할 희생양이 필요한 히틀러는

반유대주의 공략해서 유대인 금융인을 타깃으로 삼은 것이었습니다.

3. 히틀러의 유대인 차별 정책

히틀러는 수상이 되자마자 유대인 차별 정책을 시작합니다.

1.경제권 박탈

193341일 독일 정부는 유대인 상점과 사업체에 대해 경제적 일일 보이콧을 선언합니다.

유대인 상점을 약탈, 유대인을 산발적으로 폭행하여 유대인의 상점에 대한 불매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유대시민의 권리를 취소한 첫 번째 법률은 전문직 공무원 복원에 관한 법률

193347일 발표된 아리아인 혈통이 아닌 공무원은 퇴직해야 한다

이에 따라 비 아리아인은 공무원직을 박탈하였죠. 이것은 조직 직업 공동생활에서

유대인을 제외시키하는데 사용한 최초의 법적 공식입니다.

1934년 제3 공화국 총통에 오른 히틀러는 베르사유조약 전면 폐기합니다.

전쟁배상금을 지불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본격적 전쟁 준비에 들어갑니다.

그러자 히틀러와 나치의 지지율은 점점 상승하기 시작하였습니다.

2. 유대인의 시민권 박탈

히틀러는 1935915일 뉘른베르크 회의에서 나치당이 승인한

유대인의 권리를 박탈하는 뉘른베르크 법을 공표합니다.

뉘른베르크 법은 크게 두 가지 내용을 담습니다.

첫 번째 제국 시민권법 인종적으로 순수한 독일인만 독일 시민권을 가질 수 있게 하겠다.

독일 또는 그 와 관련된 혈통만 시민으로 정의하고

유대인은 독일의 완전한 시민 될 수 없고 정치권이 아예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독일인의 피와 명예를 지켜야 한다.

피와 명예를 지키기 위해 인종 혼합 혹은 인종 탈취 금지한 법입니다.

독일 민족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유대인과 독일인 그와 관련 혈통은

결혼 및 성관계 불가 독일 내 뿐만 아니라 외국에서의 결혼도 모두 무효로 하였습니다

독일인과 성관계 맺은 유대인은 강제수용소 보내졌고 독일인 또한 3개월 동안 정신교육 받아야 했습니다.

유대인과 입맞춤 손잡는 행위도 처벌 대상이 되었습니다.

유대인 혼혈 등급까지 매기기 시작했는데요

유대인 검사 판사 381명도 해임하였습니다.

유대인 소유 기업은 배척받아 파산까지 하게 되었고요 지방정부와 법원 대학에서 쫒겨나게 됩니다.

독일인과 유대인을 철저하게 분리하고 유대인 학살의

최초의 법적 근거가 되었습니다.

3. 유대인 낙인찍기

19388월 가족 명칭 변경법

독일 내 유대인 중 남성은 이스라엘 여성은 사라라는 이름을 추가해서

관공서에 신고하게 하였습니다. 이는 이름만 들어도 유대인이라는 것을 알게 만든 것입니다.

유대인 여권에 관한 법령제정

나치는 모든 유대인의 독일 여권 무효화 하였으며

독일 유대인들은 여권사무소에 제출해 유대인들을 상징하는

‘J' 자를 찍게 하였습니다.

유대인 표기에 관한 경찰 규정

194196세 이상 유대인은 공공장소에서 유대인이라고 적힌

다윗의 별 배지를 왼쪽 가슴에 착용해야 했습니다.

또한 유대인 만7000명이 나치에 의해 집단으로

강제 추방당했습니다.

 

이렇게 히틀러는 잔인무도하게 유대인들을 차별하고 핍박하였으며

살인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현재 독일은 유대인 학살에 대해 큰 잘못을 저지른 것에 대해 반성하고 공교육 투자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으며 1970년 발리 브란트 총리가 유대인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울면서 사죄를 하는등 반성의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4. 추천영화-인생은 아름다워

1938년 시골 총각 귀도와 친구 페르시오는 귀도의 삼촌이 있는 도시로 가고 있습니다,

귀도 도시에서 만난 도리라는 여성을 만나고 첫눈에 반하게 됩니다.

그렇게 귀도와 도라 사이에 조수아 라는 아들이

태어납니다. 단란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 세 가족.

조수아가 5살이 될 무렵 느닷없이 군인들이 처 들오게 됩니다

그렇게 조수아와 귀도는 영문도 모른 채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수용소행 기차에 오르게 됩니다.

수용소에서 귀도는 어린 아들에게 거짓말을 합니다.

이곳은 일종의 게임을 하는 곳이라고 설명하였지요

그렇게 시작된 수용소 생활

이때 독일군이 들어오더니 독일말 할 줄 아는 사람을 찾습니다.

그리고 독일말을 할 줄 모르는 귀도가 손을 들어 자원합니다.

이렇게 통역을 하게 된 귀도는 독일군의 말을 게임 규칙을 설명하는 것처럼 통역하여 아들이 이곳을 정말 게임장이라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 장면.. 정말 가슴이 찡합니다. 귀도가 얼마나 자식을 사랑하는지 보여주는 장면인 거 같습니다.

아들은 아빠의 이 말을 끝까지 믿게 되면서 귀도가 조수아를 위해 힘들고 지친 상황 속에도 웃음을 잃지 않으며 아들을 지키는 내용입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너무나도 감동적인 영화인데요

일제 강점기를 겪은 적이 있는 우리나라와 비슷해서 그런지

참 오랫동안 이 영화가 여운에 남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인생 최고작이라고 손꼽히는 영화인데요 한번

관람해 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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