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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보는 역사

조선의 국모를 무참히 죽인 사건-을미사변

by 놀러와이 2023.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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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을미사변 정의

1895108일 조선 주재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를 중심한 암살단들이 조선의 경복궁에 자기들 마음대로 침입하여 건청궁 곤녕합 일대에서 조선의 국모였던 명성황후 민씨를 칼로 무참히 살해하여 암살하고 시신에 석유를 뿌려 불태운 극악무도한 사건입니다.

 

2. 을미사변 전개

당시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뒤 박영효 김홍집 등을 내세워 갑오개혁을 통해 조선 내정까지 간섭하게 되면서 조선에 대한 침략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청일 전쟁에 승리한 일본을 보며 프랑스 러시아 독일 등의 국가들은 더 이상 일본의 대륙 침략을 저지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하여 일본이 청일전쟁으로 청나라에게 받은 랴오둥반도를 청나라에 다시 반환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를 삼국간섭이라고 하지요

이러한 국세 정세 가운데 조선은 일본은 견제하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의 힘을 빌려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을 견제하고 친일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명성황후는 러시아 공사 카를 베베르와 제휴하였습니다. 이에 친일 세력인 박영효는 자신 마저 제거될 위기에 처하자 18957월 명성황후 시해 음모를 계획하였다가 발각되어 일본으로 달아나고 친일파는 세력을 상실하였습니다.

정권을 잡은 명성황후는 민영환을 주미 전권공사로 임명하고 동시에, 친일파 세력인 어윤중, 김가진 등을 면직시키고 이범진, 이완용 등의 친러파를 끌어들여 친미·친러 세력이 주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주한일본공사 이노우에 가오루가 조선에 약속한 증여금 300만 원을 일본이 제공하지 않자, 조선에서는 일본에 대한 반감이 증가하였습니다.

일본에서는 이노우에 가오루 대신 육군 중장 출신 미우라 고로를 주한일본공사로 임명하게 됩니다.

친러, 친미 세력이 우세하고 친일 세력은 세력이 약해진 조선은 일본인 교관이 훈련한 2개 대대의 훈련대를 해산하고자 하였으며, 일본의 강압에 따라 제정한 신제도를 다시 구제도로 복구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주한일본공사인 미우라 고로는 명성황후로 화살을 돌려 명성황후를 시해할 치밀한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일본군 수비대와 일본인 거류지 담당 경찰관 및 친일 조선인까지 동원할 계획을 세우고 조선훈련대를 포섭하였습니다. 또한 하수인으로서 아다치 겐조를 공사관으로 명성황후 시해의 전위대로 삼아, 흥선 대원군을 궁중으로 호위하는 일을 시켰습니다.

한편 조선 정부는 일본 세력을 확실히 상실시키기 위해 군부대신 안경수를 일본공사관에 보내어 일본군 훈련대 해산과 무장해제를 서면으로 전달 하였습니다. 일본은 상황이 급격히 변하고 있음을 직감하고 명성황후 시해 계획을 108일 새벽으로 결정하였습니다.

일본인 자객들은 서대문을 거쳐 미리 포섭한 조선 훈련대와 합류하여 광화문을 통과하였다. 훈련대 연대장 홍계훈과 군부대신 안경수가 1개 중대의 병력으로, 일본인 자객과 훈련대의 대궐 침범을 제지하다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궁 내부에 있는 이경직과 홍계훈을 살해한 다음, 이어서 왕비의 침실인 옥호루에 난입하여 명성황후를 살해하고, 시신에 석유를 뿌려 불사른 뒤에 묻었습니다... 이후 일본은 제4차 김홍집 내각을 수립하였고, 친일파가 다시 내각을 장악하였습니다. 하지만 명성황후 시해 당시 고종, 황태자 및 미국인 시위대 교관 다이, 러시아인 건축기사 사바틴 그 외 많은 조선인이 있어 그 현장을 실시간으로 생생하게 목격하여 사건의 전말이 외부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한 국가의 국모를 무참히 살해한 것에 대해 국제적으로도 거센 비난이 일어났으며 조선 국민의 대일 감정은 극도로 나빠져 제천에서 을미의병이일어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영국 미국 프랑스에서 강경한 태도로 을미사변의 사건과 관련하여 사실을 주장하고 나서자 일본은 사건 처리 방안으로 명성황후를 시해한 미우라를 주한일본공사에서 해임하고 고무라 쥬타로를 임명하였습니다.

여기에 일본은 미우라 등 관계자 48명을 히로시마감옥에 구치하고, 형식적으로 관련 혐의자에 대해 취조하였으며, 결국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곧 전원 석방했습니다.

 

을미사변으로 일본군이 자신의 신변도 위협할 수 있다고 생각한 고종은 조선으로 버리고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아관파천의 계기가 되었고, 이에 김홍집은 명성황후를 시해한 친일파로 몰려 조선인들에게 피살당하고 맙니다.

 

3. 불꽃처럼 나비처럼

이 영화는 을미사변 사건 중심으로 그려 나가는 전개가 아닌 픽션로맨스입니다. 

자영(명성황후) 과 자영의 호위무사 무명남중심으로 이루어 질 수 없는

애틋한 감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결말은 다들 아시다시피 끝에는 명성황후가 일본 자객들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는데

왜 이렇게 이 장면이 슬플까요? 정말 조선의 마지막을 보는 것 같아 슬프고

이후에 조선이 일제강점기 속에서 얼마나 뼈저린 아픔을 겪는지 알아서 일까요?

역사영화는 결말을 알아도 감정이 새롭게 피어나는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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