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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보는 역사

어제 농사짓던 인물이 내일 독립군으로-봉오동 전투

by 놀러와이 2023.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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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봉오동 전투란

192067일 봉오동에서 홍범도, 최진동, 안무 등이 이끈 대한 북로 독군부의 한국 독립군 연합 부대가 일본군 무찌르고 크게 승리한 전투입니다.

그 많은 일본군을 상대로 적은 수의 우리 대한독립군들이 대승을 이루어 낸 전투로

우리 독립군들의 독립에 대한 강한 의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2. 봉오동 전투 전개

192064일 독립군 홍범도 최진동 부대의 독립군 사령부 1개 소대가 북간도에서 두만강을 건너 함경북도 종성군 강양동에 있던 일본군들을 공격하였습니다

독립군들의 활발한 활동에 대해 방비책을 세우고 있던 일본군들 입장에선

독립군들이 좋은 빌미를 제공한 것입니다.

이에 급보를 받은 일본군들은 중대를 출동시켜 반격전을 시작하였습니다.

독립사령부는 1개 소대를 봉화리라는 곳에 매복시켰습니다.

그리고 일본군과 총격전을 벌이면서 일본군을 일부러 유도하였습니다.

유도된 일본군들이 잠복해 있는 독립군 부대 앞까지 왔을 때 독립군들은

일제히 사격을 퍼부어 60명을 사살하였습니다.

이렇게 일본군이 급습을 당하자 일본군 제19사단장은 보병 소좌 야스카와가 지휘하는 보병 및 기관총대 1개 대대를 출동시켰습니다.

이에 홍범도, 최진동등 독립군들은 적은 수로 많은 수의 적과 대결하려면 작전상 지리적으로 요지를 점령하여 공격하는 것이 최상책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에 독립군들은 북편으로 가 안산 촌락 후방 고지에서 매복하였습니다.

야스카와 부대가 안산 촌락으로 돌입하자 매복 중이었던 독립군이 일제히 총격을 가하였습니다.

야스카와 부대는 니히미(新美) 중대와 합세하지만 지리적 악조건과 불의의 기습으로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에 이를 갈고 다시 정비한 야스카와 부대는 야마자키 중대를 주력으로 독립군을 추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야스카와 부대가 고려령 서방에 도착했을 때, 북방 및 동북방 고지에서 매복하고 있던 소수 독립군의 치열한 사격을 받고 참패를 당하였습니다.

이에 화가 난 일본군은 안산과 고려령 두 전투에서 120명의 전사자를 낸 뒤에도 거듭 독립군의 유도작전에 말려들어 결국 봉오동으로 유인됩니다.

 

봉오동은 두만강에서 40리 거리에 자리 잡고 있으며 고려령의 험난한 산줄기가 사방을 둘러쳐진 긴 계곡 지대입니다. 봉오동에는 100여개 정도의 민가가 있었으며 독립군의 근거지 중 하나였습니다.

봉오동에 독립군들이 훈련하는 훈련장도 있었습니다.

 

독립군은 안산과 고려령 두 전투에서 일본군을 처참하게 무찌르고

또다시 일본군의 침입에 대비해 홍범도와 최진동의 연합 부대를 재편성하였습니다.

독립군들은 치밀한 계획과 탄탄한 조직을 구성하여 일본군에 맞설 준비를 하였습니다. 일본군은 독립군의 작전대로 봉오동으로 유인되었고, 독립군 700명이 잠복해 있는 봉오동에서 일본군들은 쓰러져 갔습니다.

이 전투에서 일본군은 157명이 죽고 20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습니다.

이에 반해 독립군은 장교 1, 병졸 3명이 전사하고 약간의 부상자만 나왔습니다.

압도적인 전승의 원인은 독립군의 독립에 대한 간절한 희망과 지휘관의 지휘력 지리를 이용한 뛰어난 작전계획이라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3.  봉오동 전투 영화

 

이 영화는 제목 그대로 봉오동 전투에 관한 얘기입니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영화의 주인공은 홍범도 장군이 아닙니다,

봉오동전투 하면 우리는 홍범도 장군을 제일 먼저 떠올립니다.

이 영화의 감독은 일부러 홍범도 장군이 아닌 주변 인물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저 또한 역사에 관심 많은 사람이지만 해철, 장하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는데요

이번 영화를 통해 새로운 독립군의 인물을 알수 있게 되어 좋았습니다.

중간중간 벅차오르고 눈물 나는 장면들도 많답니다. 봉오동전투에 관해 더 생생하게 느끼고 싶다면 영화 찾아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넷플릭스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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