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알고보는 역사

1997년 대한민국 IMF 외환 위기에 대해

by 놀러와이 2023. 11. 20.
반응형

1.1997IMF 금융위기란

국가부도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이 IMF(국제통화기금)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는 양해각서를 체결한 사건입니다.

1997123일에 이루어졌으며 회사들은 부도가 나고

직장인들은 잘려 나가고 노숙자 역시 이때부터 양산되기 시작하였습니다.

 

2. IMF의 원인

유럽이 상업혁명과 산업혁명을 이루는 과정에서 전 세계 국가들을 식민지로 만들었습니다.

당시에 일본은 적극적으로 서양 문물을 받아들였고 산업화에 성공하면서 부국강병을 이루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한반도를 침공해 우리는 일제강점기를 겪게 됩니다.

일본은 한국의 국력을 이용하기 위해 한반도를 식민지화했습니다.

그렇게 한반도 경제는 기력이 쇠약해지고 해방 직후에 다시 살아나 보려 했지만

바로 6.25전쟁이 터지면서 나라 지반이 무너지게 됩니다.

6.25 전쟁이 끝나고 한국은 선진국들이 몇백년 동안 이뤄낸 경제성장을

고작 몇십년 안에 따라가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단기간에 압축성장이 필요하기 때문에

국가 주도하에 경제를 육성하는데 특히 대기업을 키우는 데 국력을 집중하였습니다.

국력을 몰아준 방법은 해방되면서 일본이 버리고 간 땅이나 공장의 자금들을 지금의 대기업에게 헐값에 넘깁니다.

당시 미국이 한국에게 물자원조를 많이 해주면서 그 물자 역시 대기업에 많이 넘어가게 됩니다.

그렇게 한국형 재벌이 탄생하게 되었죠.

그러다가 군사정부가 들어서면서 제조업을 육성해 상품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을 외국에 수출하며 경제가 성장하면서 1977년 대망의 수출 100억달러를 돌파하고

경상수지 흑자까지 기록하게 됩니다

1976년과 1977년 사이에 국내 투자율은 15~27% 경제성장률은 13~14% 기록을 세우게 되고

이 과정에서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인건비를 대폭 깎으며 저임금 정책을 내세웁니다.

저임금과 장기간 노동을 통한 급속한 자본 축적과 경제 성장을 이루기 위해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노동삼권을 물리력으로 억압합니다.

여기서 불만이 나오면 진압하고 통제하는 과정에서 군사독재 정치가 고착되었습니다.

전태일 열사는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을 알리고자 박정희 정부와 자본기업들에게

근로기준법을 준수할 것을 요구하며 22세의 나이로 근로기준법 법전과 함께 분신자살을 하게됩니다.

겉보기엔 성과는 컸으나 독재정치를 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게 되었죠.

이러한 군사정부를 몰아내고 김영삼 정부의 공식 명칭은 문민정부

군인 출신이 아닌 일반 국민이 수립한 정부라는 뜻으로 이전의 군사 출신과 차별성을 두고 있었습니다.

당시 경제 상황은 80년대는 제조업의 시대였고 일본이 가장 잘나갔습니다.

인건비도 싸고 엔화도 싼데 품질은 좋았기 때문입니다.

제조업에서 밀린 미국은 90년대로 들어가면서 금융업을 중심으로 세계 경제를 재편합니다.

모든 국가가 자본시장을 활짝 개방하고 글로벌 금융경제에 참여하게 했죠.

우리도 여기에 들어가게 됩니다.

당시 한국에 들어선 문민정부는 국민소득 1만 달러 돌파하고

부자 국가만 가입한다는 OECD 가입 성공하여 29번째 정회원국이 됐습니다.

하지만 이 당시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지식이 너무 없었습니다.

당시 한국은 최소한의 감독도 하지 않았습니다.

최소한의 감독도 없으니 무분별 식으로 사업을 확장하게 됩니다.

국가와 은행이 대출을 쉽게 해주니까 사업을 전부 빚으로 굴리고

그러다 보니 기업들이 핵심 사업에 집중투자를 하는 대신

여기저기 투자하며 역량이 분산하며 글로벌 경쟁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은행은 이런 기업에 무조건 대출을 다 해주고

외국계 기업에서 빌려온 돈을 다시 빌려주고를 반복하며

정부는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채 국가 전체가 빚만 점점 쌓이게 되었습니다.

또한 당시 경상수지가 적자였으며 수출에 비해 수입이 많았습니다.

나라가 무역으로 적자인 상황에선 보통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의 하나가

우리나라의 돈 가치를 떨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외국 입장에서는 우리나라 물건을 싸게 들어오고

싸니까 더 많이 사게 되면서 우리는 수출이 증가

반면에 한국에 들어오는 외국산 물건은 비싸지게 되고

비싸니까 안 사게 되고 수입이 감소하게 되는 것이죠.

수입이 늘고 수출이 적으니까 해소된다이건데

문제는 그때는 이 방법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면 우리가 외국에 빚이 엄청 많기 때문에 원화의 가치가 떨어지면 갚아야 할 빚이 더 커지고

환율이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원래는 1달러를 빌렸으면 1000원으로 갚아야 하는데 환율이 오르면 1200원으로 갚아야 하는 상황인 거죠.

이렇게 한국경제는 썩어나가고 있었지만 이 와중에도 정부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기폭제가 됐던 건 아시아 금융위기입니다.

아시아 금융위기는 1997년 태국의 고정환율제 포기로

인한 동남아시아의 통화위기가 동북아시아를 거쳐 세계 불안을 가져온 일련의

금융위기 사태를 말합니다.

이 사태를 계기로 아시아에 맡긴 돈을 싹 다 꺼내기 시작합니다.

그동안은 한국에 빌려준 돈을 받을 날짜가 됐어도 굳이 받지 않았습니다. 그래야 더 오래 이자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아시아가 초토화되니 한국도 돈을 뱉어내라고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돈을 못 갚으니 기업 은행이 줄줄이 파산하고 해외자본이 한국에서 탈출하기 시작했습니다 .

달러로 바꾼다고 원화를 팔기 시작하면서 시장에 원화가 엄청나게 풀리면서

원화의 가치가 떨어지고 외국에 갚아야 하는 빚이 더 늘어나게 됐습니다.

하여 원화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가 가지고 있던 달러를 팔아 원화를 사들였습니다.

이러면 시장에 있는 원화가 줄고 원화 가치는 올라가게 되는 것이지요.

문제는 외국인들이 원화를 계속 팔다 보니 정부도 계속 원화를 사들이면서

달러를 매일 같이 팔아댔고 결국 외화 보유고가 거덜 나게 됩니다.

이 뜻은 해외에서 빌린 돈을 갚을 수가 없다는 말이고 물건을 수입할 때 대금을

치를 수가 없다는 말. 이러면 다른 나라들이 우리나라랑 무역하는걸 꺼려하게 되면서 국가 경제는 파탄에 이르게 됩니다.

결국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게 됩니다

여기서 IMF는 심한 조건을 내겁니다

-30퍼센트로 금리 인상

-노동시장의 유연화

-구조조정 부실기업을 정리

결국은 조건을 받아들이고

우리는 IMF에 원래 갚기로 한 날짜보다 빨리 갚게 되었습니다.

조건도 잘 받아들이고 금모으기운동을 하며 열심히 갚아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니

대외신용도가 회복되고 바닥을 치던 주가나 원화 가치도 회복되면서

부실 은행이나 기업들이 청산되고 핵심 산업에 집중 전문성을 갖추면서 수출시장에 경쟁력을 갖추게 됩니다

 

3. 국가부도의 날

 

IMF 사태를 바탕으로 한 실화 영화입니다.

대한민국 국가부도까지 남은 일주일을 그린 영화인데요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김혜수 배우가 등장합니다. 맡은 역할은 한시현이라는 인물인데

한시현은 한국은행 총장 재정국 차관 금융실장 등의 인물을 만나며

실질적으로 협상을 하는 인물입니다. 한시현이라는 인물을 따라가다 보면

그녀의 시도 , 장애물 등이 보이면서 영화에 재미를 더해줍니다.

또한 이 영화는 박정희 정권의 경제 성장부터 시대적 변화를 잘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1997년 국가 경제위기에서 우리 부모님 세대들이 겪었을

고통을 생각하니 정말 대단하고 위대한 분들이라고 다시금 느끼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