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알고보는 역사

잊을 수 없는 한반도의 슬픔 6.25전쟁

by 놀러와이 2023. 11. 26.
반응형

1. 6.25전쟁이 일어나게 된 이유

일본이 공식적으로 세계 2차 대전 항복을 선언하자

35년 동안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은 한반도는 마침내 독립을 이룩하게 됩니다

하지만 일본군의 무장해제 명분으로 한반도를 주둔하게 된 소련군은

8월 말 평양을 비롯한 한반도 북부를 장악합니다

같은 해 9월 소련군보다 한발 늦은 미국은 서울을 비롯한 한반도 남부를 장악합니다

이리하여 한반도에는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남한은 미국이 북한은 소련이 장악하게 됩니다

분열을 원치 않았던 한반도 주민들의 바람에도 각기 다른 이념에서 두 강대국에 영향을 받으며

남북분단이 점차 고착되기 시작합니다

이에 따라 미국의 도움을 받는 남한은 자유 정부수립을 목표한

1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선출하게 되고

서서히 독자적인 정부수립을 준비하던 북한의 김일성 역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수립하였습니다

그 당시 동아시아에 정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미국은 오히려 한반도를 태평양 극동 방위선에서 제외하는 애치슨선언을 합니다. 이에 따라 한반도가 미국의 방위선에서 완전히 제외되며

미군이 철수하게 되면서 북한의 김일성을 본격적으로 무력 척화 통일의 야망을 드러냅니다

김일성은 19493월부터 여러 차례 소련의 스탈린에게 무력 남침계획을 말했지만

과거 2차 세계대전에서 독소전으로 어마어마한 피해를 보았던 소련의 스탈린은 소극적으로 응답합니다

또한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이 보여준 압도적인 국력을 체감하면서

미국과의 전면전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는 김일성의 남침 허가요청을 50번이 넘게 거절합니다

하지만 두 번째로 핵실험에 성공한 스탈린은 결국 국제정세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판단하고 19504월 중국 공산당 마오쩌둥의 동의를

얻는 조건으로 김일성의 남침계획을 승인하게 됩니다

이렇게 6.25 한국전쟁은 김일성 스탈린 마오쩌둥이 치밀하게 모의하고 계획 한 전쟁입니다

 

2. 6.25 전쟁의 전개

1950625일 새벽 411만이 넘는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남침하게 됩니다

소련의 간접적인 지원을 받은 북한은 T -34 전차 242대와

170여대 전투기를 앞세워 서울을 향해 진격합니다

단 한 개의 탱크와 전투기도 보유하지 못한 국군은 북한군의 기습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결국 전쟁 발발 3일 만인 628일 수도 뺏기게 됩니다

북한의 남침 사실을 보고받고 위기감을 느낀 미국은 곧이어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를

소집하여 북한군의 침략에 맞서 지원군 파병합니다

59개국이 대한민국을 돕기 위해 지원에 나섰습니다.

이러한 UN군의 총사령관으로 미국의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가 임명되었습니다.

한편 북한군은 충청도 호남지역을 빠르게 점령하고 대구 근처까지 진격하였습니다

국군과 유엔군은 필사적인 지연전을 펼치며 낙동강

방어선을 형성하여 19508월 대구로 통하는 전술적인 요지인 부동에서

국군 1사단과 북한군 간에 55일 동안 치열한 전투를 하게 됩니다

학도병과 민병대까지 참여한 끝에 대구의 치열한 전투를 벌인 부동에서 3만의 북한군을 격퇴하는 데 성공하게 됩니다

 

1950915일 맥아더 장군이 이끄는 유엔군은 약 260척의 군함과 7만의 병력으로

인천상륙작전을 실시합니다

유엔군 상륙부대가 한반도 중부에서 북한군의 퇴로와 보급선을 차단하고 낙동강 전선의 유엔군이 대반격을 계획하였고

수많은 상륙작전의 경험이 있었던 맥아더 장군과 유엔군

그리고 국군은 인천을 방어하던 북한군을 손쉽게 제압하여 인천에 상륙하는 데 성공합니다

인천은 상륙작전 계시 단 하루 만에 해방하게 되고 상륙작전 이후 전세는 완전히 역전하게 됩니다

이를 계기로 남부에 있던 국군과 유엔군 또한 낙동강 근처에서 반격을 계시하고

928일에는 서울을 수복 하는등 38선 이남 지역을 대부분 탈환합니다

101일 국군 3사단이 최초로 38선을 넘어 북진하는데 성공,

1019일 국군과 유엔군은 치열한 전투 끝에

평양 수복하고 마침내 압록강까지 도달하게 되지만 전쟁은 쉽게 끝날기미가 안보였습니다

 

북한을 밀고 들어오는 국군과 유엔군을 본 김일성은

중국에게 지원을 요청하고 중국은 미국의 지원을 받는 남한과 가까워지자 비로소 위기감을 느낀

마오쩌둥은 북한이 망하면 중국이 위태로워진다고 생각하여

약속대로 전쟁에 적극 참여하여 수십만의 중공군을 조선의용군이라 이름 붙이고 북한을 지원하게 됩니다

과거 중일전쟁과 국공내전을 벌이며 풍부한 실전 능력이 있던 중공군은 60만 대군을 이끌고

유엔과 국군을 순식간에 포위하고

여기서 스탈린도 지원하기 시작하면서 국군과 유엔군은 다시 한번 38선 이북 지역을 뺏기게 됩니다

이어서 195014일 수도 서울이 중공군에게 뺏기면서

한국 정부는 부산으로 철수하게 됩니다

 

1년 뒤 19513월 국군과 유엔군은 반격하고 또다시 서울 탈환, 38선 부근까지 진격하게 됩니다

그러나 점점 양측 군 모두 상대를 한반도에서 몰아내지 못하면서

사상자만 속출하는 소모전의 양상을 띄게되었고

38선 부근의 전쟁은 서서히 고착화되어가기 시작하면서 고지전이 펼쳐지게 됩니다

지형의 영향으로 인해 전차의 지원을 받을 수 없었던 보병들은 아군의 포격 지원만 받으며

맨몸으로 전선을 돌파해야만 했고

특히 적이 깔아놓은 수많은 지뢰와 철조망 기관총으로 인해 엄청난 희생 낳게 됩니다

이렇게 소모전만 계속되자 19517월부터 유엔과 공산 진영 사이에

휴전회담이 열렸지만 포로 송환을 놓고 양측이 입장 차이를 보이자 휴전회담도 중단되고 재개되기를 반복합니다

19533월 미국이 서유럽에 힘을 집중하지 못하도록 한반도의 휴전회담을

일부러 지연시킨 소련의 스탈린이 사망하면서 길었던 휴전회담은 다시 급물살을 타게 되고

마침내 1953727일 한국 북한 양측간의 정전협정이 체결되면서

3년 동안 치러진 한국전쟁은 중단되게 됩니다.

 

3. 고지전

6.25 전쟁 당시 38선 부근에서 고지전이 한창인 가운데

강은표라는 인물은 동부전선 임무를 맡게 되며 편지 한 장을 받게 됩니다

인민군의 편지가 남한으로 전달되고 아군간부가 전사했는데 무언가 수상함을 느낍니다

여기서 사용된 무기가 아군 지휘관용이라는 것이었죠

이것을 조사하기 위해 은표는 떠나게 되는데요

그러면서 이 영화는 시작됩니다

위에서도 설명했듯 6.25전쟁은 서서히 고착화되며 고지전을 펼치게 되는데요

영화를 보면 정말 가슴이 답답해지고 왜 이전쟁을 하며 이 수많은 사람이 희생당해야 하는지

마음이 미어집니다. 다들 알다시피 전쟁은 3년 만에 결국 휴전하게 되는데요

마지막 장면에서 남한, 북한군이 무전을 통해 휴전 소리를 듣게 되고

헛웃음을 짓는 장면이 있는데 저도 모르게 이 장면에서 눈물이 났습니다

무전 한마디로 끝낼 전쟁을 위해 그 많은 사람이 한반도에서 죽은 거 생각하면

분하고 억울한 감정이 드는 영화였습니다.

고지전 영화는 전쟁의 실상에 대해 잘 표현한 영화입니다.

한번 시청해 보세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