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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보는 역사

역사상 최대 상륙작전 노르망디 상륙작전

by 놀러와이 2024.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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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계기

1942년 세계 2차 대전 중 독일군은 유럽을 넘어 소련까지 진격하여

거의 승리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프랑스를 비롯한 전 유럽이 나치 독일의 수중에 떨어졌고

서쪽에서는 섬나라 영국만이 독일군에 맞서고 있었습니다

이에 소련의 스탈린은 지속해서 영국과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 측에

하루빨리 서부전선에 대규모 상륙작전을 전개하여 독일군의 전력을 분산시킬 것을 요구했습니다

연합국도 스탈린의 요구를 받아들여 상륙작전에 대한 작전을 계획하지만

이것을 현실로 옮기기엔 너무나도 열악한 상황이었습니다

어떻게든 소련이 동부전선에서 독일군을 버텨주고 있었지만

프랑스 해안에 상륙하기 위해선 대서양을 지나야 했는데

이 시기 대서양은 독일의 유보트로 인해 완전히 봉쇄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1943년 중순이 되자 동부전선의 스탈린그라드전투로 인해

전세가 역전이 되고 연합군이 북아프리카와 이탈리아 상륙에 성공하여 이탈리아의 항복을

받아내는 시기가 되자 점차 대규모 상륙작전에 대한 가능성이 높아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대서양 전투에서 독일의 유보트를 상대로

반격에 성공하면서 결국 대서양 루트가 뚫리게 됩니다.

그렇게 194311월 스탈린 처칠 루스벨트가 테헤란 회담을 통해

2 전선을 형성할 대규모 상륙작전의 실행을 결정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영국 해안에서 프랑스 북서부 해안으로 대규모 연합군이

상륙한다는 작전명 오버로드 노르망디 상륙작전입니다.

 

2.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전개

먼저 연합군 사령부는 이 작전을 지휘할 지휘부를 구성합니다

총사령관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장군 그리고 지상부대 총사령관은

영국군의 버나드 몽고메리 장군을 임명합니다.

그리고 상륙작전에 대한 구체적인 준비는 영군해군 중령인 프레데릭 모건

에 의해 실행됩니다 그는 여러 상륙 후보지 중 칼레 지역과 노르망디 지역 사이에서

고심하다가 최종적으로 노르망디 지역으로 결정합니다

칼레지역은 영국과 가장 가까이 위치해 전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지만

독일군 또한 이 요충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미 최정예 사단을 배치해 요새화하고 있었기 때문에 노르망디로 선택하게 됩니다

게다가 이미 2년 전에 사전연습 삼아 감행했던

디에프 상륙작전의 처참한 실패로 인해

영국군은 요새화된 항구에 상륙하는 것이 얼마나 큰 피해를 보게 되는지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에 칼레보다 조금 더 멀지만 대규모 상륙작전을 펼치기

수월한 노르망디 해변을 최종 장소로 결정했고

물자보급을 위한 항구는 노르망디 서쪽에 위치한

셰르부르 항구를 점령하는 것으로 대책 마련하게 됩니다

 

또 이 작전을 구상하는 동시에 제공권에 우위를 점한 연합군 항공기들은

끊임없이 나치 독일 점령 아래의 프랑스로 출격해

독일군의 방어 시설 및 보급시설 정찰을 했고 입수해 온 정보를 바탕으로 공수부대 타격지점을

구체화하는 작업도 진행하였습니다

이때 당시 프랑스에 주둔 중이던 독일군의 상황은

히틀러와 독일군도 연합군이 프랑스 서부 해안가에 대규모 상륙작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를 알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히틀러는 나치가 점령한 노르웨이부터 남부 프랑스지역까지

견고한 해안 방벽을 건설할 것을 명령 했지만 문제는 이 길이가 거의 4000킬로에 달한다는 것입니다 이 길이는 독일군 수비대의 규모에 비해 터무니 없이 길게 늘어졌기 때문에

사실상 효율적인 방어가 불가능했죠

그렇기에 독일군 측도 마찬가지로 연합군의 예상 상륙지점을 선정하고

방어 병력을 집중하는 방식을 취해야만 했습니다.

이를 위해 히틀러는 롬멜 장군에게 프랑스 서부 해안의 방어를 맡겼습니다

이 방대한 해안가 중에서 독일군 또한 연합군과 마찬가지로

노르망디와 칼레지역을 예상 상륙지점으로 생각하고

그중 거의 무조건 칼레지역으로 상륙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해안가를 직접 시찰한 롬멜 장군은 연합군이 칼레가 아닌 노르망디에

상륙할 것 강력하게 주장하고 노르망디 해안가에 대한 방어를 강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롬멜은 병사들을 동원해 해변에는 약 6000만개의 지뢰를 매설함과 동시에

철조망으로 도배하고 아예 상륙정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물속에 기뢰를 대량 매설하였습니다

비록 당시 독일군의 보급 부족으로 인해 100킬로 미터에 달하는

노르망디 전체 해안을 다 할 순 없지만

이러한 롬멜의 방어작전은 후에 노르망디에 상륙하는 일부 상륙부대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게 됩니다 이렇듯 독일군 내에서 이미 영웅 반열에 든

롬멜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왜 독일 수뇌부 대부분은 상륙 예상 지역을

칼레지역이라고 믿었을까요? 이유는 연합군의 완벽한 기만작전에 속았기 때문입니다

연합군 입장에서 이 상륙작전은 반드시 성공해야만 했습니다

이를 위해 연합군 사령부는 마치 칼레에 상륙할 것처럼

독일군을 속이기로 한 것입니다

이 작전을 포티튜드 작전이라고 합니다

칼레 지역의 북쪽은 영국 제 4군단이라 칭한 가짜 부대를

스코틀랜드에 주둔 중인 것으로 꾸몄습니다

남쪽에는 미국제 1집 단군이라 칭한

100만명에 달하는 유령부대를 편성하고

칼레와 가까운 영국 해안에 집결 중이라는 정보를 고의로 흘립니다

남쪽집단군의 총사령관으로는 당시 독일군 사이에서도 유명했던

패튼 장군으로 임명

독일군 정찰기를 속이기 위해 수백 대의 탱크와 야포,

항공기 고무 모조품을 만들어 해안가에 배치하기도 했습니다

이 모조품을 제작하기 위해 영화 제작팀까지 투입하게 되죠

또한 이 과정에서 연합군 정보부는 끊임없이 부대이동과 보그에 관한 정보를

흘려서 독일군 정보부가 해석하도록 놔두었습니다.

독일군 입장에서는 가장 무서운 적국의 사령관(패튼)

대규모 상륙부대를 이끌고 칼레로 상륙할 것이라는 예상이 거의

기정사실로 됩니다. 히틀러 또한 감쪽같이 속았습니다

한편 연합군은 오직 노르망디상륙작전을 위한

새로운 무기와 장비들도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조립식 임시 항구 와 지뢰 제거 전차

화염방사기 전차 등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장비들은 실전에 투입되어 활약을 보여줬습니다

그렇게 미국 영국 캐나다군을 주축으로 한 수십만의 연합군 상륙부대들이

차근차근 영국으로 집결하고 운명의 날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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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작전은 시작부터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맑은 하늘로 예상되던 기상이 갑자기 악화하고

최소 일주일간 악천후가 지속 될 것 이라는 날씨 예보가 전달된 것입니다

결국 총사령관 아이젠하워는 긴급회의 끝에 디데이를 하루 미루게 되고

독일군 또한 이 기상 상태라면 최소 한 달간은 연합군의 작전 수행이 어렵다고

안심합니다

심지어 롬멜 장군조차 기상 상황을 믿고 본국 독일로 잠시 떠나게 됩니다

그런데 갑자기 66일 하루만 날씨가 다시 좋아질 것이라는 예보가 전달되고

아이젠하워 장군과 몽고메리 장군은 이 기적과 같은 기회를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고 예정했던 66일 작전실행을 명령을 합니다

새벽 대규모의 공군 수송기가 영국을 떠나 노르망디 상공에 진입

그리고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시작됨과 동시에 칼레

쪽에 낡은 배와 항고기 모조품을 띄어 기만 작전을 실시하였습니다

결국 노르망디 후방거점을 점령하는데 성공하고

거기에 이미 이전부터 꾸준히 독일 점령군에게 대항해 온

프랑스 현지 레지스탕스 대원들도 협동작전을 펼쳐 주요 철로를 파괴하고

전화선을 끊는 등 맹활약을 펼칩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영국 해안을 출발한 대규모 상륙정들이

노르망디 해안가로 향합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진행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독일군은 칼레지역에 병력을 그대로 주둔시켜 오지도 않을 적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미군이 맡은 노르망디 서쪽 상륙부대는 상륙 후 해안을 점령한 뒤

셰르부르 항구가 있는 코캉탱 반도까지 점령해야 했고

영국과 캐나다군의 부대는 상륙 후 가장 중요한 인근 방어 거점인 캉이라는 도시를

점령해야만 했습니다.

87000명에 달하는 상륙 선두 부대가 동시다발적으로 5개의 해안에 상륙하고

이 중 대부분의 해안을 손쉽게 점령하지만 미군이 맡은 오마하 해변은 생각보다

강력한 독일군 수비대의 저항으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됩니다

오마하 해변을 수비 중이던 독일군 부대는 다른 해변 부대들과 달리

정예병들로 이루어진 352보병사단이었고

지형 또한 비교적 방어에 유리한 지형이기 때문에 이곳에 상륙한 미군은

거의 궤멸적 타격을 입게 됩니다

하지만 나머지 해변은 수월하게 점령당한 상황에서

오마하 해변의 독일군도 결국 수세에 몰려 퇴각 할 수밖에 없었고

마침내 오마하 해변도 연합군의 수중에 떨어지면서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성공으로 마무리됩니다

3. 라이언일병 구하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인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전 세계 전쟁 영화사상 최고의 작품이라고 불리는 영화입니다

군인 필름 영화 애호가 사이에서도 완벽에 가까운 고증으로 흔히 언급되는 작품

입니다. 유명한 감독 유명한 배우가 나오는 영화이니만큼 한 번쯤 볼 가치가 있는 영화인 거 같습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번 관람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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