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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보는 역사

6월 민주항쟁에 대해서, 6월 민주항쟁이 가진 의의

by 놀러와이 2024.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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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월 민주화운동의 배경

1980년 전두환은 99.9.% 압도적인 표를 얻어

11대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이때는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는 직선제가 아니라 소수 선거의단이 선거해서 뽑는 간선제였으며

당시 투표자는 총 2525명 무효 1표 제외하고 나머지 모두 찬성을 한 것입니다

장충체육관에 모인 대의원들이 뽑은 대통령 일명 체육관 대통령이라 불립니다

또한 국가 폭력도 난무했습니다.

1980531일 설치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일명 국보위는

사회를 정화하겠다며 삼청교육대를 설치했습니다

군인 경찰에 연간 80만명이나 동원된 이 계획에서

머릿수를 채워서 실적을 채우기 위해 6만명 이상이 끌려갑니다

불량배들을 소탕한다더니 전과도 없는 무고한 시민 수만 명은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평생 가는 불명예를 떠안게 됩니다

삼청교육대 내부에 무자비한 가혹행위는 고문으로 사망자까지 발생합니다

이는 신군부에 불만을 가진 세력을 강제진압 하기 위한 국가폭력이자 인권유린입니다

군부독재 아래 군사정권에 맞선 20세기 대학생들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피를 흘리며 거리로 나섭니다

 

198653일 일명 인천 5.3 민주항쟁 직후부터 전두환 정권은 공포정치와 반공 이데올로기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민주화 운동과 학생운동에 대해 본격적으로 대대적인 탄압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대통령 임기 1년밖에 남지 않은 19871

상부의 명에 따라 경찰들은 학생운동과 관련된 자들을 모조리

잡아들이기 시작하고

 

114일 새벽부터 끌려온 한 서울대학생이

경찰의 고문을 받다가 사망하게 됩니다

 

115일 신성호 기자는 기삿거리를

찾기 위해 평소 친분이 있었던 대검찰청 이홍규 과장에게 찾아갑니다

이홍규 과장에게 뭔가 일이 터졌다고 직감한 신성호 기자는

이미 그 일에 대해 아는 것처럼 맞장구쳐주던 와중에

이홍규 과장은 남영동에서 서울대생이 죽은 것에 대해 말하기 시작합니다

신성호 기자는 고문에 대해 눈치를 채고 이것저것 취재를 시작하는데

점점 윤곽이 드러나고 학생의 정체가 파악됩니다.

남영동에서 죽은 학생의 이름은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 박종철이었습니다

 

1987115일 오후 중앙일보에 실린 특종 기사에 시민들은

놀람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 기사 제목은 경찰에서 조사받던 대학생의 쇼크사

었습니다. 순식간에 국내, 해외까지 퍼지게 되자

오후 6시 검찰과 경찰 관계자들은 공식 발표를 내놓습니다.

학생이 겁에 잔뜩 질려가자고 수사관이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쓰러졌답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은 국민들의 의혹은 더 증폭되었습니다.

 

1987114일 새벽 하숙집에서 연행된 대학생 박종철은 치안본부 수사관들에게

이끌려 대공분실 조사실로 향함 경찰들은 학생운동을 해왔던 그에게 선배

박종운의 행방을 캐묻지만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박종철의 선배 박종운은 현상금까지 걸려있는 수배자였죠

결국 경찰은 무차별적인 폭행과 폭언 전기고문을 행했고

박종철은 3시간 만에 사망하게 됩니다

그의 사망 시간은 당일 오전 11시 경이었습니다.

박종철 군의 사망 직후 경찰은 즉시 시체를 화장해서 고문 사실을

덮으려 했지만 최환 서울지검 공안부장은 밤늦게 급히 찾아온 경찰의 말을 듣고 이상함을 눈치챘습니다

당시 경찰은 박종철 군이 심장마비로 조사를 받다가 죽었다는데

부모님이 화장을 요구하였고 시신 화장합의서에 도장을 찍어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안부장은 경찰의 화장요청을 거부 시신 보존 명령을 내립니다.

 

결국 115일 부검을 진행하게 되는데

부풀어 오른 복부와 훼손된 폐 온몸을 휘감은 멍 자국

당시 국과수의 황적준 부검의는 박종철 군이 목 부분이 눌려서 질식사 했다는

소견을 내놨습니다. 경찰 간부들은 사인을 쇼크사로 바꾸라고 압박하였지만

그는 끝내 의사로서의 양심을 지키며 사실 그대로 적힌 부검사를

적어냈습니다. 그럼에도 경찰 측에서는 고문이 있었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숨깁니다. 117일 또 한 번 기사가 터집니다

시신을 제일 먼저 검안한 오연상 내과 의사의 인터뷰였는데

사망 진단 시 복부가 심하게 부풀어 있었고

폐에서는 수포음이 들렸으며 조사실 바닥에 물이 흥건했다

는 내용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기사를 읽고 바로 물고문인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결국 오연상 씨는 사망진단을 내렸는데

경찰들은 시체를 급하게 용산병원으로 옮기려 했습니다.

이대로 시체를 보내면 사망 장소는 대공분실이 아닌 응급실로 뒤바뀌게 되고

경찰이 응급실로 갈 때까진 살아있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가 신속히 병원에 시체가 들어가니 막아달라는

연락을 취한 덕에 결국 시체는 응급실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오연상 씨는 용산의 호텔로 끌려가 24시간 동안 경찰조사를

받고 신길동 대공분실에서 16시간 조사를 받다가 일주일 동안 도피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박종철 사망 이후 경찰 수뇌부들은 이 사건을

어떻게든 은폐하고 축소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입니다

 

하지만 결국 119일 강민창 치안 본부장은 어쩔 수 없이 기자회견을 열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인정합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인해 그동안 쌓여온 국민의 민주화 열망을

폭발시킵니다. 전국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인 시위가 이어졌고

어김없이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이 발사됐으며

시위 규모는 전국적인 대중운동으로 확산

2. 6월 항쟁 전개

19876월 항쟁이 시작되었습니다

610일에는 박종철 고문살인 은폐 조작 규탄 및 호헌 철폐 범국민대회

일명 6.10 국민대회가 열릴 예정이었습니다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6.10 국민대회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강행할 시 헌정 파괴의 저의가 있다고 판단해 엄단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갑호비상경계령을 발동합니다

긴장 감도는 분위기 속에서 6.10 대회 하루 전날

연세대 정문 앞 시위대에게 전투경찰이 최루탄을 쐈는데

대학생 이한열 군이 피를 흘리며 쓰러진 것이었습니다

당시 경찰은 허공을 향해 45도 발사해야 한다는 원칙을 어기고

최루탄을 직접 사격한 것입니다

금속 파편을 맞은 이한열 열사는 결국 한 달 뒤 사망했습니다

전 국민의 분노 속에 6.10 국민대회가 열렸고

이때부터 629일까지 대한민국 전국에서 벌어진 민주화 시위를 6월 항쟁이라

부릅니다.

이전에도 민주화 운동은 계속 진행 되었지만 6월항쟁을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이전의 시위 주체는 주로 재야단체와 대학생들 중심이지만

6월항쟁은 직장인, 시민들까지 거리로 나오게 됩니다.

총인원은 400~500만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은 계엄령을 내리려 했지만

끝내 계엄이나 비상조치 같은 국가 긴급권을 실행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한 합리적 추측은 다음 해 열릴 88올림픽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냉전 시대에 열린 그간의 올림픽대회는 정치대결의 양상을 보였습니다.

1980 소련에서 열린 모스크바 올림픽에는 미국을 포함한 서방 국가들이

대거 불참

1984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올림픽에는 소련과 동유럽국가들이

불참했었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1988 분단국가 한국에서

열리는 서울올림픽은 의미심장했죠

그야말로 전 세계의 이목이 변방의 분단국가로 집중

만일 한국에서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개최된다면

그간 냉전 시대를 종결하고 진정으로 인류가 화합하는

평화의 시대를 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전두환은 올림픽 유치를 자신의 중대한 업적이라 생각

88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해야 했습니다.

결국 전두환 정권은 유혈진압을 포기하게 됩니다

당시 전두환은 국민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군대까지 동원했다간

자칫 올림픽을 제대로 못 치를 수도 있다는 주변의 만류를 받아들입니다

또한 당시 바티칸 교황청에선 유혈 진압 시 88올림픽 보이콧까지 하려 했고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 역시 친서를 날라며 전두환에게

조용히 압박을 가했습니다

결국 전두환 정권은 손을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1987629일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 민정당 대표가

6.29 선언을 발표(대통령 직선제 수용) 다음 날 전두환이

모든 내용 수용하고 대한민국은 그토록 염원하던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뤄냅니다

 

3. 1987

이 영화는 6월 민주화 항쟁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영화입니다

6월 민주화 항쟁은 특히 우리 역사에서 중요한 운동인데요

대통령 직선제를 이루어 냈으며 27년간 이어져 온 군부독재가 끝나고

제도적 민주주의를 끌어낸 운동입니다. 그 과정이 어떻게 전개되는

이 영화에 잘 표현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아는 많은 유명한 배우도 나오니 한번 시청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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